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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 박구주막 (휴업)/우리 술 공부중

고문헌 속 계량에 의문. (부제:나는왜이시간에이러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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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7분을 막 넘어간다.
오밤중에 이상한거에 꽂혔다.
시작은 내일모레 빚을 술 레시피였는데... 공부했던 고문헌들 하나둘 끄집어오다보니 홉. 되. 말의 늪에 빠져버렸다. 근데 각각의 책마다 표시하는 기준 계량이 다 달라서.... 뭘까왤까 고민하다 구글로 넘어갔다. 각 고문헌들이 고려. 조선시대때 기록된 것들이라면 그 당시때 쓰던 계량법이 있으리라.

우리나라 도량형은 조선시대부터 나라가 정한 단위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그걸 가늠할 기구가없어 집집마다 자기네껄 사용했단다. 헐.

정부기관에서는 고문헌 복원에 앞서 그 당시때의 도량형 기준이 우선이라 치고 세종실록(세종28년)때 양기의 용적에 관한 기록에 근거하여 단위를 매겨놓았다.

즉. 조선시대에는
홉. 57.2657ml
되. 572.675ml
말. 5726.75ml 였단다. 정부 마음임. 국민은 자기네집 됫박기준임.
요걸 쉽게 쌀을 기준으로 1되 570ml로 보았는데

근데 이게 곡물마다 조금씩 부피가 다르다하여 원료별로 이렇게 친절히 나눠뒀는데 1되여도 차이가 이래난다. (아래사진참고)

그 후. 1909년 일제강점기로 일본의 도량형으로 강제개정되면서 지금의 용기사이즈가 나온건데. 1되가 1.8리터가 되면서 조선시대때 용량에서 3배가 널뛰기되었다.

그렇담... 1909년 이전에 쓰인책에는 1되 570ml를 적용하고 그 이후의 문헌에는 1되에 1.8리터를 적용해야하는건가..? 근데 보아하니 그 이후에 쓰인 양조관련 책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만 1리터. 1.8리터를 적용하면 된단다.

친절도하셔라.
근데 구글에서 찾아본 정부사이트 민속학 관련 자료에는 조선시대 1되는 592ml정도로 600ml를 기준으로 삼았던데.. 570과 590의 차이는 무얼까....

거기에 전통주 공부할때 모든 무게를 1:1로 이해하는 법에 버릇이 들어 이를 쉽게 포기못했는데...

고민하면 뭐하나 싶어 집에있는 텀블러 꺼내다가 됫박실험을 했다.

1되인데 물은 536ml . 쌀은 491g이 나왔다. 이걸 큰 차이없이 1:1로 보아도 될랑가..? 10배가 커지면 450g정도 차이나는건데.... 으흠


나 이거 지금 쉽사리 결론 못내리고 있다. 뭔가 어떤 큰 오류를 발견한 기분이다. 왜 오밤중에 문헌에 있는 도량을 지금걸로 환산하고 앉아있었을까...-_-;

단순히 물:쌀의 비중적인 차이만 살짝 감안하여 모든 문헌에 (1909년 이후의 개정된 도량법제외) 나온 비율을 계산해보면 좀 나을랑가? (뭐가 나아지는거지?)
물론 곡식마다 1되였어도 부피가 달랐던 것처럼 쌀이랑 누룩의 비중도 달라지긴 하겠다. 누룩을 어떤 크기로 빻느냐에 다른건데...-_-; 이건 다른기관걸 참고해서 20.5%정도 차이나는걸로 결론.

아... 이렇게 적어내려가다 각각의 책들과 기관에서 보여준 도량형을 보니... 어떤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다.....

결론은 본문에 이미 났으니 다시 비율계산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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